[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7] 김윤 삼양그룹 회장 "서랍에서 잠가던 글로벌 전략 깨워낼 것"
서울 종로구 연지동 삼양그룹 본사 사옥 앞에는 500년 가까이 된 은행나무가 있다. 1970년대 중반 이곳에 새 사옥을 짓던 고 김연수(1896~1979) 창업회장은 "공사비가 더 들더라도 나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 덕분일까. 이 은행나무는 11층짜리 삼양사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85년 장수기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2003년 사옥을 리노베이션하고부터는 온고지신의 기업문화를 대변하는 듯하다. 김윤(56) 삼양그룹 회장은 "원칙을 지키는 경영 덕분에 장구한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장수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창업주와 부친 김상홍(86) 명예회장 숙부 김상하(83) 그룹회장에 이어 2004년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삼양의 새 도약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는 글로벌 투자 계획을 실천에 옮길 때"라고 강조했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공격 경영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희한한 회사" -삼양사가 지난해 560억원 적자를 냈다. "삼양사는 사업 지주회사 성격을 갖는다. 지난해 석유화학 계열사들의 부진에 따른 지분법 손실이 컸다. 올해는 성적이 괜찮을 것 같다." 삼양그룹은 삼양사를 주축으로 삼남석유화학.삼양화성.삼양제넥스 등 13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섬유 원료로 사용되는 테레프탈산(TPA)을 주로 생산하는 삼남석유화학이 1200억원대 적자를 내면서 지주회사인 삼양사도 적자를 낸 것. 최근 TPA 가격이 오르면서 삼남석유화학은 올 상반기 흑자로 전환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의견이 다양하게 있는 것 같다. 지금 분위기는 좋다. 각종 경제 지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내년까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잠깐 좋았다가 다시 꺾이는 이른바 더블 딥(이중 침체)이 오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도이체방크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그는 '트리플 딥(Triple Dip.삼중 침체)'을 걱정하더라. 경기가 본격 회복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년 말께나 (회복세가) 보이지 않겠나." -삼양사는 1924년 창업한 한국 최장수 기업 가운데 하나다. 긴 역사만큼 위기도 많이 겪었을 텐데. "듣고 보고 배운 것이 많다. 해방 직후 자유당 정권 시절 큰할아버지(인촌 김성수.1891~1955)의 정치 참여로 정권의 견제를 받았을 땐 할아버지(고 김연수 회장)께서 서울 성북동 집을 팔아 회사를 살린 적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도 인촌이 설립한 동아일보가 야당지 역할을 해 회사가 위험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장을 지으려 해도 설립 허가를 몇 년씩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98년 외환위기가 첫 번째 위기였는데 무난히 넘겼다. 외형 확대에 치중하지 않아서다. 선배들이 기초를 잘 다진 덕분인데 나는 이런 혜택을 상당히 입었다."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원동력이 있다면. "좋은 선배가 많았고 그분들이 정도 경영 즉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했다.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길게 봐서 이게 큰 힘이 됐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솔직히 40대 중반까지만 해도 눈앞의 이익에 대한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삼양에는 이를 자동으로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아버님.숙부.사촌과 선배 등 최고 경영진의 지혜와 경험이다." -수당(고 김연수 회장의 호) 회장이 경영 멘토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올해로 입사 24년이 됐는데 할아버님과 함께 일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버님과 숙부께서 항상 '이 사안은 할아버지였다면 이렇게 하셨을 것'이라며 당신들께서 받은 교육을 전수해 주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0여 년 전 경쟁사와 우리 회사 임원의 처우를 비교해 보니 우리가 뒤졌다. 나를 포함해 임원 보수를 올리자고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라면 임원 월급은 올려도 오너는 안 올렸을 것이다. 주주로 배당을 받으니 보수를 올릴 이유가 없다고 하셨을 것'이라고 하시더라. (웃으면서) 내가 봐도 '희한한 회사'가 삼양이다." -경영 교육은 어떻게 받았나. "사원으로 입사해 상사들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다. 오너 패밀리인데도 '특별 취급'을 하지 않아 때로는 섭섭한 적도 있었다. 입사 초기 외국 출장을 갔다가 비행기 연결 시간이 맞지 않아 귀국이 하루 늦어진 적이 있다. 당시 담당 임원이 '회사 허가를 받지 않은 출장'이라며 하루치 출장비를 정산해 주려 하지 않아 항의했던 게 기억난다. 이게 삼양의 문화다."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의사결정은. "2000년 11월 SK케미칼과 폴리에스테르 사업 부서를 통합해 휴비스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60년대 후반 화섬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좋은 시기를 보냈으나 이내 후발 주자의 과잉 투자와 중국의 추격으로 업체 간 과당 경쟁이 불거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해 SK케미칼.제일합섬.코오롱.효성 등 화섬 업계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5개 회사가 뭉쳐야 할 처지였고 실제로 통합 논의도 있었다. 결국 두 회사만 뭉쳤다. 휴비스는 시너지를 내면서 지금까지 잘해 오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중공업.정보기술(IT) 등에서 크게 성공한 것에 비하면 삼양은 상대적으로 정체된 느낌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1~2002년 어려움을 겪던 회사들이 매물로 많이 나왔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인수합병(M&A)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는 사업 패러다임이 이익과 성과를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던 때라 망설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반성한다." 사원으로 입사 특별 취급 받지 않아 -삼양사는 부채비율이 60%대에 불과하다. 이익 잉여금도 3000억원에 가깝다. 그만큼 투자 여력이 있다는 얘긴데 공격적인 투자를 할 뜻은 없나. "지금 외부기관과 함께 향후 5개년 사업 계획을 짜는 중이다. 연말까지 계획을 확정할 생각인데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세우자'는 데 뜻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도 돈도 필요할 텐데.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역량보다는 마음가짐을 높이 산다.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직이 바뀌려면 최고경영자부터 '변화 전도사'가 돼야 한다. 돈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따라붙는다." -M&A도 고려하고 있나. "기업이 성장하려면 이제 M&A는 필수다. M&A는 특히 인수 후 통합(PMI) 과정이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도 여러 차례 작은 규모의 M&A를 해왔는데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 큰 사이즈의 M&A를 시도해 보려 한다." 삼양은 외환위기 이후 의약바이오.식품.정보전자소재 분야에 진출하면서 한국하인즈 유지 부문(현 삼양웰푸드) 아담스테크놀로지(현 삼양EMS) 세븐스프링스 등을 인수한 바 있다. -15년 뒤 삼양이 '100년 기업'이 됐을 때 모습을 그려 달라. "그러면 2024년인가. 굉장히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점치기는 어렵지만 사이즈(규모)도 업종의 내용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WHO? 1953년 서울생. 고 김연수 삼양사 창업회장의 손자이자 김상홍(86)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경복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에 있는 MIIS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첫 직장은 반도상사(현 LG상사). 부친이 각별한 사이였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에게 “아들 교육을 시켜 달라”며 입사를 부탁했다는 것. 김 회장은 “거의 3년 내내 공휴일 없이 출근하면서 회사에서 개근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85년 삼양사로 옮겨 관리본부장·해외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2004년 회장에 취임했다. 사촌동생인 김원(51) 삼양사 사장, 친동생인 김량(54) 삼양제넥스·삼양사 사장 등과 그룹을 이끌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부인 김유희(49) 여사와 영화관에 갈 정도로 영화 감상을 즐긴다. 차진용.이상재 기자